야 2:21-24 364장 367장
한종해기자가 쓴 책 <망해도 잘사는 부자들>에 나오는 얘기입니다.
신동아그룹은 1999년 망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 시절 억울하게 뺐겼다는 등 여러 얘기가 있지만 어쨋든 최 전 회장의 부인 이형자 씨가 외화 반출 혐의를 받고 있던 남편을 구명하려고 고위층 부인들에게 비싼 옷을 상납한 옷 로비 사건은 유명합니다…당시 조사 기관에서 최 전 회장 집을 뒤졌을 때, 엄청난 돈과 서류가 나왔습니다.
부인 이형자 씨가 조사관에게서 서류를 빼앗아 찢으며 한 말은
“그 돈은 하나님께 헌금으로 낼 돈이야! 가져가면 벌받아!”
조사관은 그의 말에 이렇게 응답했었다.
“세금 내시면 하나님도 잘했다고 하실 겁니다.”
성경은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바치라”(마 22:21)고 말한다. 굳이 따진다면 신앙인인 이형자 씨의 말보다는 수사관의 말이 더 성경적인 우스운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최 전 회장은 교회의 장로로 온누리교회 담임목사였던 고 하용조 목사와는 동서지간이다. 최 전 회장은 한 인터뷰에서 “나도 추징금 체납액을 내고 싶다. 하지만 방법이 없다. 아무것도 없다”고 말했다. 29만원 1000밖에 없다는 누구말과 비숫한 얘기입니다.
최 전 회장은, 부인 이 씨가 이사장인 기독교선교횃불재단 명의의 양재동 고급 빌라에 살면서 수시로 해외에 드나드는 등 호화로운 생활을 한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나중에 기독교선교횃불재단은 소송에 져 대한생명에 479억 원을 반환해야 했습니다죠 이는 최 전 회장 부부가 회사 돈을 종교 단체에 헌금했다는 증거다.
불량 기업인 장로 부부와 선교 기관의 밀월이 낳은 좋지 않은 결말입니다. 저도 최장로가 63빌딩 지어놓고 하나님과 제일 가까운곳에 기도처가 있다는 우스개 얘길 들었는데 씁슬하네요..
기독교에서는 구원의 길에 대해 얘기 할 때마다 이신칭의를 강조합니다 ‘믿음으로 의롭게 되고 구원을 얻는다’는 로마서3;28 에 나오는 말입니다.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와는 상관없이 믿음으로 의롭다고 인정받는 것입니다
빌3;9 나는 율법에서 생기는 나 스스로의 의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오는 의 곧 믿음에 근거하여 하나님에게서 오는 의를 얻으려고 합니다
바울이 로마서를 통해 오직 믿음으로서 구원을 얻는다고 말한 배경에는
그가 이방인을 위하여 복음을 전파했기 때문이다. 이방인에게 있지도 않은 엄한 율법에 대한 순종을 통한 구원얘기하면 누가 믿겠습니까?
아니면 인간이 고행과 참선을 통해서 구원한다고 하면..이건 기독교 이전에 많은 종교에서 다룬 부분입니다 .
어쨌든 이신칭의는 복음의 정수이며 기독교 핵심교리 맞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바울의 이신칭의 가르침을 오해해서 믿음으로 구원을 받으니 행함은 중요치 않다는 사상이 교회내에서 팽배했습니다. 죄를 더지으면 은혜가 더한다는둥..온갖 도덕적 일탈을 가져옵니다.
앞서 신동아 그룹사건에서 보듯이 사기를 치더라도 십일조.헌금내면 넘어가는거 아이가? 대기업 회사 자금 유용해서 교회나 선교단체에 십일조 마치면 다 되는거 아닌가?하는 이상한 논리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로마서에 나오는 이신칭의의 폐단을 시정하기 위해 기록한 것이 야고보서입니다.서로 상충되는것처럼 보이나..그게 아니고 서로 보완해주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2;24에 사람은 행함으로 의롭게 되는 것이지 믿음으로만 되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 여기서 행함이란 행함 단독을 말하는것이 아니고 믿음과 함께 가는 행함 즉 성화(santification) 의 측면을 강조한것입니다. 야고보서에서 예를 든 아브라함 경우, 아들 이삭을 바칠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이삭을 다시 살리실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한 행동이었습니다 즉 이러한 행동이 믿음의 증표였다는 것입니다
기독교 역사를 보면 행함을 강조한 자들과 믿음을 강조한 자들이 서로 충돌하여 다툼이 되었지요.
그 대표적인 것이 로마 천주교와 기독교의 관계입니다. 초대 교회 로부터 처음 오백 년 간 이에 대해 그다지 큰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중세 천 년 동안 행함을 통한 구원론이 대세를 이루었습니다. 고행, 선행 등이 구원의 조건으로 거론된 것입니다. 이러한 이행칭의의 결정판이 16세기로마의 성베드로 성당을 건축할 때였습니다.
건축비 조달을 위한 궁여지책으로 면죄부 판매 등의 행위가 구원의 조건으로 강조되었던 것입니다.
현세에서 자손들이 낸 동전이 헌금함에 쨍그렁 하는 순간, 조상의 영혼이 연옥에서 천국으로 직행한다. 연옥은 카톨릭에서만 인정하는 영혼이 고통받으며 머무러는 중간 지역같은 곳이죠. 성모 마리아를 강간해도 깨끗이 벌을 용서 받을 수 있다.
1517년 10월31일사제이고 비텐베르크대학 교수인 마틴 루터가 교회 앞문에 95개조 반박문을 붙임으로 종교개혁이 일어나고 그 결과로 기독교가 나오게 되었습니다.
제 아는 천주교인들보면 고아원봉사 마니 가고 양로원봉사 마니 가더라고요합. 물론 선행이 구원의 조건이 되면 안됩니다.
더 봉사하고 더 구제하면 구원받는다. 이건 모든 종교에 나오는 얘기입니다.
반대로 요즈음 한국교회는 행위보다 말을 너무 강조합니다. 말이 너무 많아요..설교만 너무 강조하는 것도 문제입니다. 사랑의교회 고 옥한흠목사가 매주 설교준비에 38시간이 평균적으로 걸렸다는 다큐를 보고 알았는데 저는 생각하기를 그시간 차라리 봉사를 했으면 어땔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성경주석을 보고 성서 주해이니 강해설교니 제자훈련이니 .. 필요하다고 하는분도 있겠지만 저는 ..성경만 열심히 보면 되는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너무 믿음만 강조한 사이비 종교 아시죠
믿으면 곧 구원이다 해서 회개도 필요없고 성화의 과정도 부정하는 구원파 .세월호 사건때문에 저도 알았습니다만..모세를 바꾸어 회사도 세모 이름짓고..신학적으로 무지한 유병언이 나와서 예수란 누구인가? 라며 뭐 있는것처럼 씨부렁 거리는 걸 티비에서 본거 같습니다. 말안들으면 집단 폭행도 서슴치 않더라고요
믿음과 행함..바늘과 실로 생각하시면 되요.. 믿음이 있는데 ..
행함이 없다..이건 앞뒤가 안맞는 얘기입니다
믿음은 행함으로 온전케 된다. 이것이 기독교 입장입니다
오늘 아침 행함에 있어서 한가지만 얘기하겠습니다.
저도 토론토에 오래살다 보니까 나 자신도 모르게 씹는 것에 아주 편안해 하고 익숙해져 있더라고요
대부분 한인들이 가게 하니까 가게문 열어 놓고 전화통 붙잡고 교회 담임목사부터 올려놓고 씹고 그다음 중직들..그다음 교인들 다씹고 그게 끝나면 다른 교회로 넘어갔다가 그게 끝나면 교민사회 등 여기 저기로 갑니다. 그게 다 끝나면 다시 본교회로 와서 한번 더 씹고 씹는 것을 마치지요.
음식을 꼭꼭 씹으면 뇌가 자극되어 좋아진다고 합니다. 우리가 맛을 보아야하는 씹는 맛은 음식 씹는 맛이면 충분합니다. 토론토에 얼마나 많은 나라의 음식이 많습니까?
한국으로 치면 읍이나 면도 될까 말까한 동네에서 이것저것 씹으면 결국은 나중에 탈이 나고 원수됩니다.그리고 이 원수도 잊을만 하면 또 외나무 다리에서 만나더라고요..이게 살아가는 이치더라고요
이제는 구원이 오직 믿음이냐 오직 행위냐라는 소모적 논쟁은 접어두고
이신득의(以信得義) 했으니 이행득인(以行得人) 하자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 공로가 아닌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으니 즉 이신득의(以信得義)했으니, 이제부터는 올바른 행동들을 통해 사람을 얻으라는 것입니다…..이행득인 하라는 것입니다
혹시 안 씹으면 배가 고파 죽을것 같다..그럼 적게 씹어십시요.
소식하십시요. 그것이 사람을 얻는 비결이고 장수 하는 비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