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5: 24-31 하나님의 저울, 82 나의 기쁨 나의 91 슬픈마음
미국 경찰보면 꼭 군대같습니다. 9·11테러 이후, 국토안보부(Department of Homeland Security)가 경찰의 군사무기 구매를 지원해주면서 특공대를 앞세운 경찰의 중무장화가 가속화되었죠. 캐나다 경찰또한 1사람잡으러 가는데 10명 이상 출동하고 총있다는 신고 들어가면 무조건 샷건으로 중무장한 스왓팀, 경찰특공대를 출동시킵니다 규정이라고 불가피하다고 하지만 과잉대응의 측면이 많지요..
법원의 로고를 보면 ‘저울을 든 여인’의 형상이 있습니다.
이는 그리스 신화속에 등장하는 ‘정의의 여신’ 디케(Dike)인데,
후에 로마시대에는 유스티티아(Justitia)로 불리게 됩니다
오늘날 영어에서 ‘정의’를 뜻하는 ‘저스티스(justice)’는 바로 여기서 유래한 것이라고 합니다. 보통 정의의 여신은 눈을 안대로 가린채 한손에는 저울을 한손에는 칼을 들고 서있어요.
하지만 우리나라 대법원에 가면 조금 다른 정의의 여신을 만날 수 있어요 안대로 눈을 가리지 않고 눈을 저그시 아래로 깔고
앉아있지요. 오른손엔 저울이 왼손엔 법전이 펼쳐져 있어요
사람들은 대법원에 있는 정의의 여신이 눈도 가리지 않고 (눈을 가리는 이유가 편견 없이 잰다는 의미입니다) 이건 법과 정의가 지켜지지 않고 있는 우리현실을 말하는 것이라고도 합니다
어쨌든 저울은 법의 공평함을 칼은 법집행의 엄격함을 나타낸 것인데 칼을 경찰이 함부러 휘둘러 문제가 많지요
지난 주일 아침 6시 40분 일어났습니다..새벽기도 시간이 5시 30분이니 미리와서 기도하고 끝나고 기도하면 40-50분 기도를 하는데..주일 아침 6시 40분에 일어났으니 기도 시간이 지나서 일어 난 것이죠..그때 잡념이 들어왔습니다.1년전과 비교해서는 내 형편이 낫지만 지금 나는 무엇을 하고 지내는 것인가? 눈이 안좋아서 일어나자 마자 안경을 써야 하는데 안경이 없었습니다.온방을 뒤지면서 안경을 찾는동안 내속에 깨달음이 왔습니다.
안경이 없어면 한치앞도 못보는 내가 내 인생의 한치앞도 못보는 주제에 뭔말이 그리 많냐 하는 그런 깨달음이 왔습니다.
바벨론. 실은 로마와는 비교가 안되는 대제국으로 역사가들은 바벨론을 문명의 발상지로 보고있습니다.바벨론의 마지막왕 벨사살왕
.그는 느부갓네살왕의 아들로 아비가 교만하여 7년동안 짐승처럼 산것을 보고 도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예루살렘 성전에서 가져온 금은그릇 들로 귀한손님 일천명과 술잔치를 합니다. 이 금은그릇은 예배때 사용되는 성스러운 기물로 조심스럽게 다루어져야 함에도 이런 망령된짓을 하니 몸통도 없는 뚝잘린 손가락이 나타나 벽에 글을 쓴것입니다. 메네 메네 (세어보니) 데겔 (달아보니) 우바르신 ( 재본결과 나라가 끝이다)라는 것입니다. 바벨론성이 워낙 견고해 전쟁중임에도 불구하고 안심하고 술잔치를 벌였는데 혹자는 메대 군사들이 그성의 물길을 타고 들어와 그성을 점령했다고 합니다. 그날밤 벨사살왕은 살해됩니다.
벨사살왕에게는 날벼락이지만 하나님 편에서는 날벼락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어떠한 오차도 없는 완벽한 하나님의 저울질을 통해 이루어진 일들이었기 때문입니다. 다니엘이 벨사살왕에게 얘기합니다. ‘데겔’ 즉 무게를 달아보았다는 의미인데 하나님이 “왕을 저울에 달아보니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부족함 때문에 임박한 재앙이 임할것이라고 비록 다니엘이 얘기해주었지만 이미 수습불가의 상태였는 것이지요
하나님은 사람의 하는일 즉 우리의 행동을 저울에 달아 보신다고 했습니다. 부족한지 넘치는지 균형인지 …
악인을 달아보니 입김보다 더 가볍다고 했습니다
사실 하나님의 저울은 정확하고 고장이 나지않는 저울입니다.저울에는문제가 없으니 저울질을 당하는 우리쪽에서 무게가 더나가게 해야되는데 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영적무게가 대체 무엇일까요?
‘영혼의 무게는 21g’이란 주장 아시는지 모르겠네요?
맥두걸 박사가 1907년 과학저널에 발표한 이 실험은 ‘인간의 영혼 역시 하나의 물질’이란 가설에서 시작합니다.
그는 ‘사람이 죽은 뒤 정말로 영혼이 육체를 떠난다면, 물리적으로 그 실재를 측정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겠느냐’며 임종 전후의 사람들을 초정밀 저울로 측정합니다. 그 결과 사람이 숨을 거둘 때 땀·소변 등의 수분과 폐에 들어있던 공기가 신체에서 빠져나가기 때문에 사람의 무게가 반드시 줄어든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여기서 박사가 주목한 것은 6명의 환자 몸무겐를 정밀 측정한 결과 수분과 공기를 합한 무게보다 21g이 더 줄어들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박사는 “숨진 환자의 몸에 인위적으로 숨을 붉어넣어 봤지만 한번 줄어든 의문의 21g은 다시 회복되지 않았다”며 “떠나간 영혼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어떻겐 이 현상을 설명할 수 있겠느냐”고 주장했습니다.
더불어 개 15마리를 대상으로 같은 실험을 했는데요 사람과 달리 개는 죽을 때 몸무겐 차이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사람에겐 영혼이 있지만, 개에겐 영혼이 없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 연구는 그 해 미국 의약학회지에 소개되면서 화제가 되었습니다만, “실험에 사용된 샘플 규모(6명)가 너무 작은 데다, 임종전후에 환자 몸무게 변화치가 무슨 큰 신뢰가 되겠느냐는반론이 힘을 얻어 이 연구는 잊혀졌습니다 .
우리 자신의 영적 무게를 날마다 매순간 재보시는 하나님을 의식하면서 저희들은 살아야 합니다.
무엇으로 부족한 저울을 채울것인가? 무게가 나가는 귀중품, 하늘의 보화로 채워야 하는데 그럼 무엇이 무게가 나가는 하늘의 보화인가?
가장귀한 보배이신 예수님, 보배이신 주님이 우리속에 계시면서 매순간 매순간 우리삶을 지배하면 지배할수록 영적 무게가 더 나간다는 것입니다. 우리삶의 영역에서 주님이 주인이십니다 주님의 주인되심.로드쉽을 인정하는 부분이 넓어지면 넓어질수록 저울의 영적 무게가 더 무거워 진다는 것입니다
시간의 주인도 주님이십니다. 교회의 주인도 하나님이십니다. 인간관계의 주인도 주님이십니다. 물질의 주인도 주님이십니다. 미래의 주인도 주님이십니다..이럴때마다 저울의 무게가 깃털같이 가볍다가 서서히 서서히 무거워 진다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교회의 주인이 하나님이다 인정하는 것이 무엇일까 예를 하나들겠 습니다. 모세가 인격적으로 실수하고 부족했습니다. 아론과 미리암이 동생 모세를 책망했을 때 하나님은 실수한 모세보다 하나님의 주인 되심을 인정하지 않은 아론과 미리암을 벌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말하는말 “여호와께서 모세와만 말씀하셨느냐 우리와도 말씀하지 아니하셨느냐?목사만 안수받았냐? 장로도 안수받았다.넌 신학공부했냐? 난 훨씬 더 어려운거 공부했다.넌 공부했지만 난 환상을 봤다
”하나님이 모세를 세웠음에도 불구하고 모세가 인격적으로 부족하다 하여 그들이 모세를 무시하고 순종하지 않는 것은 교회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것과 똑같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의 주인은 하나님이다 하면서 해석을 자기들 유리한 쪽으로 해석하는데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가듯이 교회에는 질서도 있어야 되고 순종도 있어야 되는 곳입니다. 모세의 시종자로 여호수아가 순종하고 복종하는 삶을 사니까 하나님은 가나안땅을 정복하는 지도자로 사용하셨습니다.
오늘 이아침 우리를 하나님의 저울에 달아보고 계시는데 대체.내삶의 어느 부분에서 아직도 하나님의 주인되심을 인정하지 않고 있는것입니까?
백부장처럼 “말씀만 하옵소서” 로, 수로보니게 여인처럼 “개들도 주인의 상에 부스러기를 먹나이다”로, 하나님을 우리의 주인으로 인정함으로 하나님의 저울질 데겔을 통과하는 성도님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