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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의 끝

막9:25-29 487 401 기도의 끝은 있는가?

이번주에 3번째 남북정상회담이 북한 평양에서 있었지요.

북한에도 기독교가 존재하고 있는 것을 알리고 남한의 기독교인들과 교류및 포섭할 목적으로 1988년에 평양에 봉수교회를 건설했습니다

봉수교회를 건축한 후 처음에는 그 주변에 사는 간부 부인들로 가짜 성도들을 조직하고 “교회에 나와 찬송가를 부르고 종교의식에 참가하는 것은 단순한 활동이 아니고 사회주의 국가 건설의 투쟁이다”하면서 참석을 독려했지만 가짜 교인들은 교회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출석부까지 만들어 출석이 저조한 사람은 자기비판까지 하게했지만 그럼에도 많은 여성들이 ‘아프다. 집에 갑자기 일이 생겼다’는 핑계를 대면서 빠지기 일쑤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변화가 감지되었습니다. 출석에 대한 통제가 완화되었음에도 교회에 나오는 여성수는 오히려 늘어났습니다. 자발적인 출석률이 100%가 되자 아예 출석부가 사라졌습니다.

예배 참석의 좋은 점을 여성들이 느꼈던 듯합니다. 목회자의 설교를 듣고 노래도 부르니 마음이 편안해지고, 예배와 찬양을 하는 시늉만 하던 이들이 믿음이 생기자 예배 시간 전부터 교회에 나오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심지어 조금만 아파도 안 나오던 이들이 고열로 끙끙 앓아도 예배는 빼먹지 않았습니다.

이들의 자발적인 모습에서 진짜 신앙이 생겼음을 간파하고 ‘위험요소’가 돌출되자 당은 교회 주변에 접근하는 사람들 즉 숨어 있는 신자를 색출하기 위해 봉수교회 주변 아파트에 망원경을 설치했습니다.

망원경 설치 후 당에서 놀라는 일이 발생하였습니다. 교회에서 찬송가 소리가 들려오면 청년 몇 명이 나타나 교회 담장에 기대 무언가를 열심히 적는 것이 발견되었습니다. 보위부가 그들을 체포했는데 음악대학 작곡반 학생들이었습니다.

1980년대에는 북한의 음악대학에서 자유주의 국가의 명곡을 가르치지 않았고 행진곡풍의 2/4박자의 곡들을 가르치고 만들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찬송가 선율을 들은 한 음악대학 학생이 그 사실을 급우들에게 알렸습니다. 찬송가를 듣고 악보를 만들고 싶어도 교회에 들어갈 수는 없는 학생들은 담장 밖에서 몰래 찬송가를 듣고 악보를 만들다가 보위부에 붙잡힌 것입니다. 이 학생들은 보위부의 경고를 받고 풀려났습니다.

그 다음 목격된 사례도 당으로서는 충격적인 것이었습니다. 교회에서 예배 시간이면 어김없이 나타나 그 옆길을 서성이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체포해 조사해 보니 예전부터 믿었던 신자였습니다.

김일성은 북한에 더는 신자가 없고 종교문제는 해결되었다고 선언했지만 교인들의 신앙이 변하지 않았다는 증거였습니다. 그들은 당국의 탄압이 두려워 신앙을 버렸다고 말했을 뿐이었습니다.

사실 평양이라는 도시는 조선이 기독교를 받아들일 초기에는 동방의 예루살렘이라 불릴 정도로 기독교가 부흥했지요. 1907년이후 전국을 휩쓴 부흥운동의 시초도 평양 대부흥 운동에서 비롯되었지요..

하지만 1945년 해방이후 70년이 지난 지금은 공산치하의 수도로 종교의 자유가 없습니다. 오히려 일제 식민지때보다 더 가혹합니다

북한에서 몰래 신자가 이불을 뒤집어 쓰고 간절히 기도하는 걸 인터넷에서 본적이 있습니다..북한에서 기독교인이라고 순교를 당하고 불이익을 당한 사람이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아니 그들이 얼마나 신앙의 자유를 위해서 북한체제의 변화를 위해서 기도했겠습니까? 그 기도가 응답되어 지는 것을 보지 못하고 죽은 사람은 또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인터넷에 자주 나오는 분당 우리교회 이찬수 목사님 아버지도 목사님 이셨는데 그분은 40 일 금식 기도 하다가 돌아가셨다고 하네요…목회 잘해보겠다고 처자식 놔두고 올라가서 40일 금식기도를 했는데 그 기도중에 죽었다니..이것을 저희들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되는 것일까요?

여기서 제가 질문하나 드리겠습니다.

과연 기도의 끝은 있는 것인가? 물론 기도에서 응답 받은것도 있지만 응답을 못 받은 것도 얼마나 많은가?

‘악한 끝은 없어도 선한 끝은 있다’는 말이 있지요.

못된 사람, 악행을 일삼은 사람에게는 미래가 없지만, 바르게 사는 사람, 선하게 사는 사람에게는 희망이 있다는 말입니다…즉 기도한 사람에게는 희망이 있고 미래가 있는 것인가? 북한에서 신앙의 자유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다가 그것을 못보고 죽은 신자에게는 과연 기도의 끝이 있는 것일까?

아버님은 비록 금식기도 하다가 돌아가셨으나 그 아들 이찬수 목사님 사실 개인적으로는 잘 모르지만 설교 들어보니까 좋든데요…하나님이 아버님의 금식기도를 받으시고 그 아들에게 목회잘하게 복을 주신것은 아닐까? 응답이 당대에 이루어진게 아니고 후대에 이루어진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북한이 언제 어떻게 복음화 될지 현재로선 알수없지만…로마에서 313년 밀라노 칙령으로 기독교 믿는것이 자유로와 질때까지 로마의 기독교인들은 무려 250년을 카타콤이라는지하 무덤에서 박해를 피해 살았습니다. 거기에 비하면 해방후 73년도 그리 긴 세월이 아닐수 있겠죠…며칠전 문재인 대통령이 평양 5.1경기장에서 연설할때에 남과 북이 오천년을 같이 살았고 칠십년은 헤어졌다고 했는데..이 헤어진 시간이 문제인 것이죠..

저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의 기도를 통해 기도의 끝을 보았습니다

십자가에 못박히 실때가 임박 했을때에 예수님은 감람 산에 제자들과 같이 갔습니다.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유혹에 빠지지 않게 기도하라 하시고

돌 던질 만큼 떨어진 곳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였습니다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아버지의 뜻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면서

땀방울이 피방울 떨어지는것처럼 기도했습니다. 대체 어떻게 기도를 하였기에 의사인 누가의 눈에 땀방울이 피방울 떨어지는 것처럼보였을 까요?

그렇게 기도를 하니 그 기도를 통해

십자가의 고통을 감당할 힘을 받았고 부할의 영광도 맛보았습니다. 죽기 살가로 기도한 주님은 기도의 끝 ..부활의 영광을 맛보았습니다.

하지만 모든 기독교인들이 다 이런 기도의 끝을 경험하는 것은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신앙생할하지만 어떤 사람은 하루에 오분 십분 기도하며 지내며 어떤 사람은 한시간 두시간 기도하며 살아갑니다. 문제는 기도의 양에서는 엄청난 차이가 있지만 실제 생활에서는 새끼밥먹고 별차이없이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많은 신자 들이 생각 하기를 그들이 눈물의 기도로 날밤을 지세우는데 과연 하나님은 그들의 눈물을 보긴 보는 것일까?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전 지난 사십 이개월 동안 정말로 많은 시간을 기도에 쏟아 부었는데..여전히 손에 꽉 지는게 없습니다..

몬트리올 구치소에서 나오기 몇 달전에는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지난 2년이상을 하루빨리 나갔으면 하고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빨리 나가게 해달라고만 기도했는데나오기 몇달전부터 다른 생각이 들어왔어요 ..감.옥에 갇힌 바울과 실라를 봐라..그냥 찬송부르고 기도하니 하나님이 알아서 지진을 통해 옥문을 열어주지 않느냐? 기도 방향을 언제 나가는 시점에 집중하지 말고…그냥 하나님을 찬송하고 말씀보고 마음의 평안을 유지하면서 하루하루 보내는 것으로 기도의 방향을 바꾸었습니다..사실 지난 4월 cbc가 이자리 교회에 와서 촬영 했는데 벌써 끝났어야 할 협상이 질질 끄는데..물론 데드라인이 있지만요…기도방향을 협상 빨리 끝나는데 촛점을 마추기보다는 지금 내가 하루 하루 지내는 이 과정…여기에 무엇인가 하나님의 뜻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를 포함해서 기도의 응답이 없어서 고민하는 분들은 이말씀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를 향하여 우리가 가진 바 담대함은 이것이니 하나님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 받은 줄로 안다라고 했습니다 요일 5:14-15

무엇이든지 구하라..다 응답해 주신다.는 것입니다.다만 아직까지 응답이 없다고 한다면..지금 하고 있는 기도의 내용이 하나님의 뜻..내뜻보다 더 높은 주인의 뜻과 같은지 확인하고 점검해 보라는 것입니다

기도는 향이라고 계시록에 나와 있습니다

그 어린 양 앞에 엎드려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을 가졌으니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

저희들이 드리는 기도의 향 냄새가 좀더 강해야 되지 않을까요? 저희들이 드리는 기도의 향에서 나오는 연기가 좀더 굵고 길어야 되지 않을까요?

교우 여러분

혹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진퇴양란의 상황에 처해 있으십니까? 문을 열어보니 낭떠러지밖에 안보이십니까?

이제는 눈물도 마르고 차마 말도 하고 싶지 않으십니까?

이아침 분명히 주님 말씀하십니다. 기도외에 다른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수 없다고..기도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힘으로 해결할수 없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예수님 제자들..사도들. 아니 초대 교황인 베드로가 와서도 해결할수 없는것을 해결하는것은 오직 기도 뿐이라는 것입니다…

기도 외에는 다른 길이 없음을 깨닫고 하나님께 바짝 엎드려 쉬지 않고 기도하는 것..이것이 진정한 영성인 것입니다.이것이 우리의 영혼 속에 넘쳐 흐르는 하나님의 진정한 살리심 입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맞습니다.우리의 소원은 기도의 끝..하나님의 살리심을 보는것이고…꿈에도 소원은 부할의 영광을 맛보는 것입니다

통일이여 어서오라 통일이여 오라

기도의 응답이 이루어지는 시간을 기도의 끝을 보는 시간을 제발 제발 앞당겨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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